張南極
1894-04-0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장남극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중국 소재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인사과원(人事課員)으로 함북 온성군(穩城郡)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북로독군부는 1920년 5월 3일 봉오동에서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 광복단(光復團), 의군부(義軍府) 등 6개 독립운동단체 간부들의 연석회의가 개최되어 1920년 5월 28일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안무(安武)의 국민회군(國民會軍), 최진동(崔振東)의 군무도독부(軍務督軍府)가 연합하면서 결성되었다. 부장(府長)은 최진동이 맡았으며, 안무는 부관(副官), 홍범도는 북로제1군사령부 부장(部長), 주건(朱建)은 부관(副官)이 되었다. 병력은 4개 중대로 편성하여 이천오(李千五)ㆍ강상모(姜尙模)ㆍ강시범(姜時範)ㆍ조권식(曺權植) 등이 중대장이 되었다. 장남극은 1920년 7월경 김학성(金學成)ㆍ이서오(李瑞五)ㆍ오기준(吳琪準)ㆍ전도영(全道榮)ㆍ변남조(邊南朝)ㆍ조정훈(趙鼎訓)ㆍ안태현(安泰現)ㆍ안봉현(安鳳鉉) 등과 대한북로독군부에 가입해 인사과원으로 임명되었다. 함북 온성군 읍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부원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9월 28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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