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明煥
1901-03-16 ~ 1949-03-2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장명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강진(康津) 사람이다. 1931년 11월 전남 강진군 군동면(郡東面)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 철폐운동을 전개하던 중 소작료 납부와 관련하여 동양척식회사 수납원과 소작인들간에 난투극이 일어나 소작인들이 무수히 구타당하는 수모를 겪자 여러 동지들과 투쟁할 것을 결의하고 항의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마침 이날이 장날이라 운집한 군중을 궐기케하여 동양척식주식회사 사무원들을 구타하고 위협하여 소작료 감면을 관철하는 등 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1932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소위 폭력행위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1933년 4월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에 가입하여 야학(夜學)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던 중 1936년 12월경 체포령이 내려 피신생활을 하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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