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鳳鶴
(188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장봉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봄에 북간도(北間島)에서 독립운동단체 야단(野團)에 가입하여 경사원(警査員)으로 적정(敵情)을 살피는 활동을 하였다. 야단은 1919년 3·1운동 직후 북만주 중동선(中東線)일대에서 동학(東學)의 한 교파인 청림교도(靑林敎徒)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였다. 야단은 청년들을 모집하여 군사훈련을 시키고 무장투쟁을 준비하였다. 단장은 임갑석(林甲石) 총무는 김광숙(金光淑) 등이었다. 장봉학은 1920년 5월 28일 경호원(警護員) 김두일(金斗一), 통신원(通信員) 마정덕(馬正德)과 함께 함북(咸北) 무산군(茂山郡) 읍내(邑內)에 사는 밀정(密偵) 이남률(李南律)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 일제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동년 9월 28일 청진지방법원(淸津地方法院)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으로 무기징역(無期懲役)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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