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連松
1901-12-12 ~ 1956-10-30·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張蓮松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장연송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자유주의를 존중하고, 전쟁 불가론의 신념을 가지고 발명과 저술활동을 통해 조국의 독립과 신사회 건설을 꾀하였다. 장연송은 20여 년간에 걸쳐 나무로 ‘무연료 원동력 환동기(桓動機)’를 만들었고, 1939년에 특허국으로부터 특허를 받았다. 그는 이 제품으로 한국독립은 물론 전세계에 물자를 풍부하게 함으로써 전쟁없는 평화로운 이상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선(善)과 도(盜)」라는 논문에서 개인주의를 주장하는 동시에 자유와 자연주의를 존중함으로써 인종간·민족간의 투쟁을 불식시키고, 공존공영·상호부조해야 함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3,000리 강산을 일본에게 빼앗겨 착취와 압박을 받고 있는 조국의 현실을 읊은 시와, 무연료 환동기를 완성하여 전쟁이 없는 자유평등한 이상사회를 하루빨리 실현하고 싶다는 내용의 시를 짓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장연송은 1942년 3월 17일 용산경찰서에 체포되었고 1943년 3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동년 형집행이 정지되어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06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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