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仁植
(188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장인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7년 중국 베이징(北京) 근교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에 의해 촉발된 중일전쟁이 발발했다. 일제는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을 위한 여성 강제 동원 정책을 결정했다. 1938년 일본군 ‘위안부’정책이 구체화되며 한국에서도 여성들이 강제로 동원되기 시작했다. 1938년 3월 31일 오후 6시경 장인식은 밀양군(密陽郡) 단장면(丹場面) 고례리(古禮里) 장호석(張浩錫)의 집에서 같은 마을 박금이(朴金伊)를 만났다. 장인식은 그에게 중일전쟁에 출전하는 일본군을 ‘위안’하기 위해 16세 이상 20세까지 처녀와 16세 이상 30세까지의 과부를 강제적으로 동원해 전쟁터로 보내려고 한다는 사실, 동원된 여성을 전쟁터에서 낮에는 취사와 세탁 같은 일 종사하도록 하고 밤에는 일본군과 성적 관계를 강제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또한 “이에 해당하는 자녀를 둔 자는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경고했다. 장인식은 중일전쟁 직후 일제의 여성 강제 동원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는 활동을 했다가 1938년 5월 24일 체포됐다. 6월 24일 부산지방법원(釜山地方法院) 밀양지청(密陽支廳)에서 이른바 일제의 ‘육군형법(陸軍刑法) 제99조 위반’ 즉 ‘시국에 관한 조언비어(造言飛語) 유포’혐의로 금고 4월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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