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泰宏
생몰년 미상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장태굉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대에 들어 만주지역의 항일 독립운동세력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정책을 추진하고자 했던 일제는 1925년 6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경무국장(警務局長)과 장작림(張作霖) 만주군벌(滿洲軍閥) 사이에 이른바 삼시협정(三矢協定)을 체결하는데 성공하였다. 협정이 체결되자 중국관헌(中國官憲)은 한인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여 일제 당국에 넘겨 보상금을 받거나 한인 양민들에 대해 부당하게 박해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들은 동삼성대표(東三省代表)의 명의(名義)로 ‘토죄봉성집안현관공리문(討罪奉省輯安縣官公吏文)’ ‘통고동삼성관민문(通告東三省官民文)’ 등의 경고문을 배포하고 중국 관리의 만행을 규탄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장태굉은 독립단원으로 활동하던 중 1927년 5월 이전 집안현의 중국 관헌에게 체포되어 일본 관헌에게 인도된 후 피살(被殺)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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