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學成
(1891) ~ 1921-05-3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장학성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자성(慈城) 사람이다. 1920년에 조직된 비밀결사 광복군청년단(光復軍靑年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광복군청년단은 이원보(李元甫)가 주도하여 평북 맹산(孟山)·영원(寧遠)·덕천군(德川郡)에 걸쳐 조직된 비밀결사 단체이다. 장학성은 조경복(趙京福)·변치순(邊致淳)·방원국(方元國) 등의 광복군청년단 단원들과 함께 친일파를 처단하는 활동을 펼치는 한편, 단원들과 함께 맹산군 옥천면(玉泉面) 잉포리(芿浦里)의 뒷산 선유봉(仙遊峯)의 굴속에서, 항일관련 문서 인쇄, 배포·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일경의 포위망이 좁혀져 가는 상황에서, 장학성과 동지 4명이 영원군 영원읍 도평리(都坪里) 천도교인 신명식(申明植)의 집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일경에 의해 탐지되었다. 1921년 5월 30일 새벽, 일경 10여 명이 그들을 체포하기 위해 기습하자 이들은 즉각 응사하며 맞서 교전이 전개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장학성은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7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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