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漢順
(188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장한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음력 7월 전남 함평(咸平)에서 이강산의진(李江山義陳)에 참여하여 일본 헌병대 밀정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함평 출신의 이강산 의병장은 일찍이 김태원의진(金泰元義陳)에 가담해서 활동하다 의병장이 순국하자 역시 함평 출신의 심남일의진(沈南一義陳)에 합류하였다. 이강산은 심남일의진에서 활동하다가 1909년 음력 7월 고향에서 박치일(朴致一)ㆍ서상학(徐成學) 등 수십 명과 함께 독자적인 의진을 결성하였다. 이에 장한순도 동참하여 일제 헌병의 밀정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1909년 9월부터 실시된 일제의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으로 더 이상 일제 군경과 맞서 싸울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1909년 10월 초 장한순은 동료 의병 30명과 함께 일본군에 자수하였다. 1909년 12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 및 모살죄(謀殺罪)로 종신징역을 받고 공소했으나, 1910년 2월 2일 공소취하로 옥고를 치렀다. 1912년 징역 12년으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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