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浩利
1895-07-12 ~ 1971-02-1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장호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가평(加平) 출신으로, 1919년 3월 15일·16일에 걸쳐 이윤석(李胤錫)·정흥교(鄭興敎)·장기영(張基榮) 등이 주동하여 전개한 가평 일대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곳 독립만세시위의 발단은 3월 14일, 서울로부터 우송으로 독립선언서를 받은 정흥교가 이윤석 등과 만나 만세시위 계획을 상의하면서부터이며, 3월 15일 오전 9시 북면(北面) 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15일 그는 면사무소 앞에서 수백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10여 개의 태극기를 앞세우고 군청으로 행진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학교와 면사무소로 시위행진 하였다. 이 때 긴급 출동한 일본 헌병이 주동자 이윤석과 정흥교 등 10여 명을 헌병대 분견소로 강제 연행하였다. 이튿날, 체포된 동지들을 석방시키기 위하여 이른 아침부터 2백여 명의 시위군중이 다시 서낭당 고개에 모였다. 이 날 그도 다시 참여하여 장기영과 선두에 서서 시위군중을 지휘하여 분견소로 행진하던 중, 긴급 출동한 헌병 2명과 보조원 4명의 제지를 받았다. 이 때 장기영이 헌병과 승강이를 벌였는데, 헌병은 공포를 쏘아대며 응원병을 요청하였으며, 이어 대대적인 검거작업을 벌였다. 그는 결국 체포되어, 이 해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소요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