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基西
(1885)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전기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음력 8월부터 11월까지 전북 무주군(茂朱郡), 충북 영동군(永同郡) 일대에서 김흥서의진(金興西義陣)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되었다. 해산군인들이 의병부대에 합류하면서 무장력이 더욱 강화되었고, 전국 각지에서는 의병이 일어나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투쟁하였다. 전기서는 전북 무주군과 충북 영동군과 등지에서 김흥서의진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08년 음력 8월 10일 남정순(南正淳)ㆍ이덕현(李德賢) 외 3명과 함께 영동군 양내면(陽內面) 모산리(毛山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9월 9일에는 양내면 의희동(義希洞)과 양남일소면(陽南一所面) 모산동(毛山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음력 9월 26일 김흥서ㆍ남정순 등 의병 수 명과 함께 무주군 북면(北面) 산의실리(山衣實里)에서, 같은 달 30일에는 영동군 양내면(陽內面) 순양리(順陽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08년 음력 11월 4일에는 영동군 양남이소면(陽南二所面) 묵정리(墨井里)와 남이면(南二面) 하묵정(下墨丁)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4월 30일 공주지방재판소(公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6월 1일 경성공소원(京城控訴院)에서 원판결 취소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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