田德鎭
(1880)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전덕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에 전북 고부군(古阜郡)에서 김익삼의진(金益三義陣)과 이성화의진(李成化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조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9년 음력 2월경 김익삼의진에서 의병항쟁을 시작하였다. 김익삼은 전남 영광(靈光) 출신으로 기삼연(奇參衍)이 결성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 소속으로 무기 및 군량을 조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기삼연이 순국하자 독립하여 전북 서부지역을 무대로 활동하였는데, 이때 전덕진은 그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음력 8월에는 이성화의진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전북 고부 출신의 이성화는 전북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의병항쟁을 전개한 대표적인 의병장이었다. 이성화의진에서 활동하던 전덕진은 일제의 이른바 남한폭대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 시기에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1910년 2월 1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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