田應斗
(1901) ~ (1935-02)·일제강점기
이명·자·호 田義根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전응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만주에서 조직된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소대장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다 일군(日軍)에 희생되었다. 조선혁명군은 1929년 12월 20일 국민부(國民府) 산하의 독립군 부대로 결성되었으며, 결성 당시 선언서에 국민부로부터 분립하여 혁명운동에 대한 군사적 역할을 전적인 임무로 한다고 하였다. 총사령에 이진탁(李振鐸), 부사령에 양세봉(梁世奉), 참모장에 이웅(李雄)이 임명되었다. 초기에는 10개의 부대로 편성되어 있었으며, 현 단계에서 자신의 임무에 대해 국내 국외에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건설을 파괴하고, 그 주구배의 기관을 청소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조선혁명군은 1930년 8월 8일 개최된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중앙집행위원회(中央執行委員會)에서 제1중대장 김보안(金保安), 제2중대장 양세봉, 제3중대장 이윤환(李允煥), 제4중대장 김문거(金文擧), 제5중대장 이종락(李鍾洛) 등이 임명되어 체제를 강화하였다. 만주사변(滿洲事變) 발발 이전에는 친일분자에 대한 처단과 독자적인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을 전개하였으며, 만주사변 이후에는 한중연합전선(韓中聯合戰線)을 구축하고 민족진영의 항일독립운동 단체 중 가장 강력한 항일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전응두는 호는 추정(秋汀)이며, 평북(平北) 선천(宣川)의 신성중학교(信聖中學校)를 졸업한 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성격이 활발하여 동지를 대하든 일반 민중을 대하든 항상 화평한 웃음의 얼굴을 가졌기 때문에 화평신(和平神)이라는 아호까지 얻었다고 한다. 조선혁명군 소대장과 중대부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934년 가을 조선혁명군 제2로 사령부 부관장이 되었다. 1935년 2월경 요녕성(遼寧省) 집안현(輯安縣)에서 일군(日軍)과 전투 중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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