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麟鶴
1898-06-23 ~ 1957-10-25·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全奇鶴, 全哲道
경북 울진(蔚珍) 사람이다. 1920년 10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3·1운동이 전민족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전인학은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였다. 구체적 방법으로는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자금 모집에 노력하기로 하였다. 당시 기성면(箕城面)사무소 직원이었던 전인학은 자신의 활동을 위장하기 위해서라도 면사무소에 계속 다니는 한편 내면으로는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평소 뜻을 같이 하기로 한 박성운(朴聖雲)·전덕문(全德文)·이백이(李柏伊) 등을 동지로 포섭하고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과 활동을 펴나갔다. 그리하여 이들은 1920년 10월 중순부터 1921년 2월까지 칼과 폭약으로 무장하고, 경북 영덕(盈德)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았다. 그러던 중 이러한 사실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그는 붙잡혀, 1921년 3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로 징역 12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감형되어 1928년 1월 27일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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