田一
(1896) ~ 1919-09-15·일제강점기
이명·자·호 田誠忍, 田義, 李君哲, 李哲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전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일은 평안남도 용강군(龍岡郡) 삼화면(三和面) 출신으로 1919년 9월 중국 봉천성(奉天省)에서 구국모험단(救國冒險團)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구국모험단은 1919년 6월 상해(上海)에서 김성근(金聲根) 등의 주도로 결성된 의열투쟁 단체였다. 단칙(團則)에서는 작탄(炸彈)으로 구국의 책임을 부담함을 목적으로 결성되었음을 밝혔다. 즉 폭탄을 제조하는 기술을 습득하여 일제의 관공서 등을 파괴하는 의열투쟁단체였다. 단본부는 상해 장빈로(長濱路) 애인리(愛仁里) 24호에 있었으며, 김태연(金泰淵, 참모부장), 이춘숙(李春塾), 김정근(金政根), 이영렬(李英烈, 서무부장), 김봉기(金鳳基), 유영국(柳榮國), 고일청(高一淸, 기술부장), 엄기환(嚴基桓), 이탁(李鐸), 왕삼덕(王三德) 등이 간부로 활동하였다. 1919년 6월부터 8월까지 폭탄제조 기술자인 영국인 1명과 중국 광동 출신 1명을 초빙하여 20여 명이 폭탄 제조기술을 배웠다. 또 같은 해 7월부터 9월까지 김성근 등 7명이 폭탄제조기술을 습득하였으며, 폭탄 제조 과정에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김성근과 임득산(林得山)이 일시 피신한 적도 있었다. 전일은 봉천성 성내(城內) 소남문(小南門) 뒤 천성여관 제3호실에서 일제고관 처단 및 관청 파괴에 사용할 폭탄을 제조하다 폭발 사고로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