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在明
(1893) ~ 1919-05-1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전재명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홍성군(洪城郡) 장곡면(長谷面)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르다가 옥중 순국하였다. 장곡면의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4일에 이어 4월 7일에 재차 일어났다. 7일 오후 8시 면민 500여 명이 도산리(道山里) 소재 면사무소 앞까지 행진하였다. 이 시위에는 먼저 동리 앞산에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온 화계리(花溪里) 주민들도 있었다. 시위 군중들은 면 사무소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를 습격,파괴하였다. 이튿날인 8일 밤 11시 면 사무소 앞에 다시 모인 면민 60여 명이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치며 면사무소로 진입하려 하자, 일본 경찰과 군인이 이를 막아섰다. 그러나 시위군중은 곤봉 등으로 대항하며 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이때 일본 군경의 발포로 11명이 잡히고 2명이 부상당하였다. 화계리 출신의 전재명은 이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1919년 4월 28일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기다리던 중,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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