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在一
1875-05-17 ~ 1951-09-0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전재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경북도 경성(鏡城) 사람이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전 가족을 이끌고 간도 용정(龍井)으로 망명하여 문화사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1독립운동시에는 용정에서 시위운동에 참여하여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자 그 매장 및 부상자 위문 등의 활동을 펴다가 재류금지(在留禁止) 처분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내외를 연결하는 비밀조직인 연통제(聯通制)를 설치하였다. 이 조직은 국내외를 연결하는 지방행정기관으로서 임시정부의 군자금 수집과 함께 통신업무도 관장하고 있었다. 동년 8월 그는 송윤섭(宋允燮)·이상호(李相鎬)·박두환(朴斗煥) 등과 함께 함북 연통제의 일원이 되어 활동하던 중, 1920년 8월 동지 47인이 동시에 체포되어 청진(靑津)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용정에 돌아가 육영사업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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