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濟益
(1861)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全濟德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전제익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일찍이 러시아로 망명하여 이범윤의진(李範允義陳)에서 부장으로 활동하였고, 1908년에는 연해주에서 이범윤ㆍ최재형(崔才亨) 등과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한 뒤 도영장(都營將)으로 임명되어 국내진공작전을 수행하였다. 이후 1916년까지 성명회(聲明會)ㆍ순치동제당(脣齒同濟黨)에 참여하는 한편, 홍범도(洪範圖)ㆍ백규삼(白圭三) 등과 의병 활동을 하였다. 대한제국기 평남 선세위원(船稅委員), 함북 길주항(吉州港) 경무관(警務官), 함북 성진항(城津港) 경무관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성진항 경무관을 지낸 탓에 통칭 전경무(全警務)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 후 동생 전제악(全濟岳) 등 가족을 이끌고 러시아 얀치헤(煙秋)로 망명하여 얀치헤를 근거로 활동하던 이범윤의진에 들어가 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4월 러시아에서 이범윤ㆍ최재형 등과 함께 동의회를 조직하고, 총장에 최재형, 부총장에 이위종(李緯鍾)을 선출하였다. 이때 그는 도영장, 휘하 좌영장(左營將)에 엄인섭(嚴仁燮), 우영장(右營將)에 안중근(安重根)이 선출되었다. 같은 해 음력 8월 동의회의 도영장으로 엄인섭(嚴仁燮)ㆍ안중근 등과 함께 의병을 이끌고 국내로 진공하여 함북 경흥(慶興)에서 일본군 정찰병 4명을 사살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국내진공작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1910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된 성명회에 참여하여 「한국국민의회(韓國國民議會) 선언서」에 총 8,624명의 서명자 가운데 1인으로 서명하였다. 1912년 순치동제당에 가입하였고, 1911년부터 1916년까지 블라디보스토크 등지를 오가며 홍범도ㆍ백규삼 등 의병 출신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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