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樂鎭
미상 ~ 1908-04-02·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낙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방인관(方仁寬) 의진에 가담하여 강원도 원주(原州)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5년 11월「을사륵약(乙巳勒約)」으로 일제에 의해 자주적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 1월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어 국왕의 통치권이 현저하게 손상되는 국망의 상황이 도래하였다. 이렇게 되자 우리 민족은 본격적인 반일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당시 그것은 크게 두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하나는 장기적인 실력양성운동으로 신문과 잡지를 통한 언론 활동, 종교와 그 단체를 통한 종교 활동, 각종 학회와 사립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 활동, 국어와 국사 연구를 통한 학술 활동 등 각 방면의 국민계몽운동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무력투쟁인 의병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그것은 1907년 7월「정미7조약(丁未7條約)」에 따른 군대해산으로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국민전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정낙진은 이같은 시기에 강원도 원주로 옮겨 와 투쟁하고 있던 방인관 의진에 투신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그는 1908년 4월 2일 방인관 의병장의 지휘 아래 강원도 문막(文幕)에서 일본군 원주수비대의 화목(花木)특무조장이 인솔하는 이른바 '의병토벌대'와 격전을 벌이던 중, 동료 의병 19명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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