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大云
1885-06-25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대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중국 길림성(吉林省)에서 의군단(義軍團)에 가입해 함북 종성군(鍾城郡)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의군단은 3ㆍ1운동 후 북간도(北間島)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로, 초기 근거지는 왕청현(汪淸縣) 초모정자(草帽頂子)였으나 봉오동(鳳梧洞) 전투 이후 왕청현 명월구(明月溝)로 이전하였다. 의군단의 주요 간부는 본부의 경우 총재 이범윤(李範允), 총사령 김현규(金鉉圭), 참모장 진학신(秦學新), 총무부장 최우익(崔友翼), 군사부장 김청봉(金淸鳳), 외교부장 신립(申立), 통신부장 지우강(池雨江) 등이었다. 정대운은 1919년 의군단에 가입해 1920년 음력 6월경 김종완(金鍾完)의 지휘 아래 송병호(宋炳浩)와 함께 종성군 동관(東關) 수남리(壽南里)ㆍ가자동(加資洞)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1924년 1월 9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 불법체포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징역 3년 4월 28일로 은사감형되어 1927년 6월 9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