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德谷
미상 ~ 1923-10-13·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덕곡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서 활동하였다. 정덕곡이 활동한 이 단체는 1920년 일제의 간도출병 이후 남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이 보다 효율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1922년 8월에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이다. 주요 인물로는 총장 김동삼(金東三), 부총장 채상덕(蔡相悳), 비서과장 고활신(高豁信), 민사부장 이응해(李雄海), 검무부장 최명수(崔明洙),교섭부장 김승만(金承萬), 선전국장 김창의(金昌義), 군사부장 양규열(梁圭烈), 법무부장 현정경(玄正卿), 사판소장 이영식(李永植), 재무부장 이병기(李炳基), 학무부장 신언갑(申彦甲), 실업부장 변창근(邊昌根), 식산국장 박득산(朴得山), 권업부장 강제하(康濟河), 교통부장 오동진(吳東振), 교통국장 황동호(黃東浩), 참모부장 이천민(李天民) 등을 들 수 있다. 정덕곡이 활동한 대한통의부 의용군은 이 때 대대, 중대로 편성되었는데, 간부 명단을 보면 제1대대장 강남도(姜南道), 제1중대장 백광운(白狂雲), 제1소대장 김보국(金保國), 제2소대장 전봉도(全奉道), 제3소대장 김기준(金基準), 제2중대장 최석순(崔碩淳), 제1소대장 김전(金田), 제2소대장 이규성(李奎星), 제3소대장 신태봉(申泰鳳), 제3중대장 최시흥(崔時興), 제4중대장 홍기주(洪基柱), 제1소대장 장세룡(張世龍), 제2소대장 김국보(金國輔), 제3소대장 신홍영(申洪永) 등이었다. 대한통의부 의용군 제2중대 제2소대원으로 활동하던 정덕곡은 1923년 10월 13일 소대장 대리 현용환(玄用煥)의 지휘하에 부대원 30여 명과 함께 고려성자(高麗城子)에서 활동하다가 중국 순사 손전청(孫殿淸) 등 중국 순경 40명의 포위를 당하여 1시간 동안 교전하였다. 그때 일부 병력은 관전현(寬甸顯) 방향으로 이동하였으나, 정덕곡은 십장(什長) 김성복(金成福)·정덕곡(鄭德谷)·계영기(桂永基)·김익선(金益善)·김용희(金龍熙)·김상준(金相俊)·김성옥(金成玉) 등과 함께 교전 중 전사 순국하였다. 그리고 동지인 방찬문(方贊文)·이송기(李宋基) 등 3명은 포로가 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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