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道隣
1900-02-03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鄭道燐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도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9월 함경남도 원산부(元山府)에서 독립만세를 불러 원산의 독립만세운 동을 촉발시키고 군중을 지휘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9월 23일 최종빈(崔鍾濱), 김연희(金演熙), 이용구(李容九) 등 7명과 협 의하여 함경남도 원산부 장촌동(場村洞) 장춘교(長春橋) 부근에서 ?한양가(漢陽 歌)?라는 창가를 부르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원산의 독립만세운동을 촉발시 키고 몰려드는 수백 명의 군중을 지휘하였다. 정도인 등은 "경찰관 파출소를 도 괴하자", "순사를 살해하고 일본인을 추방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남산교 (南山橋)를 넘고 공립보통학교(公立普通學校) 앞을 지나 극장 동낙좌(同樂座) 부 근을 거쳐 북촌동(北村洞) 시장, 경찰관 파출소 방면 일대로 압도하였다. 이 과 정에서 시위대는 북촌동·장촌동의 두 경찰관 파출소, 원산리 우편소 및 부근 일원의 일본인 상점 십 수 개소에 돌을 던지기도 하였다. 1920년 10월 13일 구류되어 1921년 2월 23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소위 1919년 제령(制令) 제7호(政治에 관한 犯罪處罰의 件) 위반 및 소요죄로 징 역 1년 6개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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