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斗殷
1892-12-17 ~ 1947-12-2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두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합천(陜川) 사람이다. 1920년 12월 서울 종로(鍾路)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는 조선청년회연합회(朝鮮靑年會聯合會)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그는 경남 합천군 초계(草溪) 청년회 대표로 참석하였다. 그의 실제(實弟)인 정두희(鄭斗禧)는 군자금 모금활동을 벌이다가 1922년 7월 서울에서 사망했는데, 동년 3월 서울로 떠날 적에 동생 정두규(鄭斗奎)에게 권총 1정과 실탄 6발을 맡겨 놓았었다. 동년 12월에 이 사실을 정두규로부터 직접 전해 들은 그는 권총을 손질하고 계속 보관토록 하였다. 그러나 정두규는 1923년 12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의 관련자로 붙잡혔다가 총기 은닉 사실이 드러나 취조과정에서 심한 고문을 당하였다. 이에 그는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 경찰의 고문 행위를 고발하며 강력히 항의하였고, 그 후 동생의 권총소지 사실을 밀고한 자로 의심이 가는 박동주(朴東柱)를 지목하여 그가 권총 3정을 소지하고 있다는 내용의 투서를 경찰에다 했으나 허위사실의 투서로써 수사에 혼선을 빚게 했다 하여 그 역시 붙잡혀, 1924년 11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무고 및 총포 화약류 단속령 시행규칙 위반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기까지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3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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