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斗欽
1832-10-28 ~ 1910-10-25·조선
이명·자·호 字 : 應七, 號 : 雲巖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두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라남도 장흥군에서 사람으로 유학자였고 1910년 당시 79세였다. 대한제국이 1910년 8월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당하자 일제에 저항한 항일운동 지식인은 국내에서의 비밀 결사를 조직하거나 국외로 망명하였다. 특히 유학자 계열 지식인 등은 자결을 통한 순국으로 일제의 지배에 저항했다.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국권 상실 소식을 들은 정두흠은 서울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며 「의고성선문(擬古先聖文)」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내가 무슨 면목으로 저 하늘의 해와 달을 대할 것인가. 살아서 설 곳이 없으니 죽어서야 돌아갈 땅이 있겠구나”라고 밝힌 후 약을 먹고 음력 10월 25일 자결 순국하였다. 1910년 11월 정두흠의 부인 한치희도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자결하였다. 그녀는 “나라가 망하고 남편이 죽었으니 홀로 살고 싶지 않다”며 죽음을 택했다고 한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22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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