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萬春
(187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만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8년 음력 2~4월 경북 장기군ㆍ경주군(慶州郡) 일대에서 장헌문의진(蔣憲文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경북 영일군(迎日郡) 출신의 장헌문은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이듬해 5월 300여 명의 의병을 모으고 의병장으로 추대된 뒤 영일군을 중심으로 경주군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군대해산 이후에도 계속해서 의병 활동을 하였다. 정만춘은 장헌문의진에 들어가 김재홍(金載洪)ㆍ김종호(金宗號)ㆍ김복선(金福善)ㆍ이태이(李太伊)ㆍ이무범(李武範)ㆍ최봉학(崔鳳鶴)ㆍ최용이(崔用伊)ㆍ장치일(張致一) 등과 함께 1908년 음력 2월부터 4월경까지 장기군ㆍ경주군 등지에서 화기(火器), 음식물, 짚신 등의 군수품 및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장헌문의진은 장기군ㆍ경주군의 산간 각지에서 활동하던 중, 1908년 5월 9일 장기군 남면(南面) 공동(公洞)에서 장헌문 외 9명이 체포되었는데, 이때 정만춘도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1908년 10월 7일 대구지방재판소(大邱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 및 살인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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