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敏英
1899-10-02 ~ 1932-09-1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민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7일 서울 재동(齋洞) 한광석(韓光錫)의 집에서 최중경(崔中庚)으로부터 청년동맹회(靑年同盟會)가 제작한 독립선언서 33통 및 ‘우리 동포여!’라는 격문 20통을 받았다. ‘우리 동포여!’의 내용은 조선과 일본의 학교를 비교하여 조선학생의 차별을 비판한 것이었다. 당시 정민영은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 4학년 학생으로 손병희(孫秉熙) 등의 조선독립운동 취지에 찬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당일 서울 시내 곳곳에 배포하였다. 정민영은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23일 경성지방법원과 1919년 7월 4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19년 8월 2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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