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富碩
1885-07-15 ~ 1942-02-0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부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17일부터 19일까지 경북 의성군 안평면(安平面)과 봉양면(鳳陽面) 도리원(桃李院)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봉양면의 만세운동은 인근의 안평면(安平面)의 기독교 인사들과 연대를 이루며 추진되었다. 이이들의 계획은 먼저 안평면에서 3월 17일과 18일에 만세시위를 전개한 뒤 3월 19일 도리원 장날에 합류하여 대대적 시위를 벌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부석은 안평면의 만세운동에 참가한 뒤 일경의 포위망을 피해 면내 창길동(倉吉洞)·삼춘(三春) 등의 각처를 시위행진하였고, 3월 19일에는 이웃의 봉양면(鳳陽面) 도리원(桃李院) 장날의 시위대에 합류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봉양면의 시위에서는 수천 명의 군중이 시위행렬을 이루었으며, 대구 80연대에서 동원된 일본군 1백여 명은 시위대를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함으로써 권해운(權海雲)이 현장에서 절명 순국하였고, 10여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로써 시위군중은 해산되었고, 정부석은 일경의 추격을 받아 붙잡혔다.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19년 5월 20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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