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士仁
1882-12-07 ~ 1958-07-26·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사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개성(開城) 사람이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한 다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하고 한말 애국계몽운동의 영향을 제거하려고 야수적 탄압을 자행하자 개성의 한영서원(韓英書院) 음악교사로 있으면서 신영순(申永淳)·이상춘(李常春) 등 동료 교사들과 함께 학생들에게 비밀리에 애국가(愛國歌) 등 애국적 창가들을 교육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했다. 그는 동료 교사들과 함께 「애국가」, 「영웅의 모범」, 「구주동란」, 「대한혼」과 같은 창가와, 목사 이경중(李敬重)이 간도지방에서 가져온 창가와 한말의 애국창가들을 모아서 「창가집(唱歌集)」제1권 40부를 인쇄하여 한영서원과 호수돈(好壽敦)여학교 학생들에게 보급하여 가르쳤고, 다음에 제2권 99부를 인쇄하여 주로 한영서원 학생과 교회 학생들에게 비밀리에 교육하여 보급했다. 이것이 1915년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신영순·이상춘·오진세(吳鎭世)·백남혁(白南赫)·장용섭(張容燮)·윤동석(尹同石)·이경중(李敬重) 등과 함께 붙잡혔는데 이것이 이른바 한영서원창가집사건(韓英書院唱歌集事件)이다. 그는 1917년 9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불경죄 등의 죄목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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