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尙鎔
1900-07-05 ~ 1951-04-25·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鄭相鎔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상용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영덕(盈德) 사람이다. 1919년 4월 영덕군 남정면(南亭面) 장사동(長沙洞)의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영덕군의 독립만세시위는 기독교계통 인사들이 주도하고 대중들이 이에 적극 호응 참여하여 전개되었으며 경북 일대에서도 대중적인 기반이 강하게 반영된 시위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영덕군의 의거 중 1919년 3월 18, 19일의 이틀간 전개된 영해(寧海), 창수(蒼水), 병곡면(柄谷面) 의거는 가장 격렬하였다. 이곳에서는 일본경찰관 주재소 3곳, 병곡면사무소, 일본인 학교인 영해공립소학교 등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특히 영해지역은 대한제국 시기 신돌석(申乭石) 의병장의 활동 근거지였으므로 항일의 전통이 강하였고 지역에 오래 세거하던 토착 문중이 서로 연계하여 항일저항의 중심세력을 형성해 오고 있었다. 이러한 영덕군내 인근지역의 만세시위 소식을 접한 정상용은 자신이 거주하는 장사면에서도 시위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김석조(金石祚) 등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여 준비를 갖춘 후 4월 4일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들은 장사면사무소 앞에 집결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장을 행진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는 이 일로 체포되어 동년 4월 16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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