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錫唐
1882-08-15 ~ 1919-03-07·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석당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안북도 철산(鐵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7일의 철산장날을 이용하여 안태영(安泰英)·심치규(沈致珪)·안봉국(安奉國)·김영락(金永洛)·김태명(金泰明)·박응수(朴應洙)·이재근(李載根)·이원겸(李元謙)·심치경(沈致璟) 등이 주동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시위는 기독교 계통의 명흥학교(明興學校) 교사인 안태영이 3월 1일 볼일이 있어 선천(宣川)에 갔다가 그곳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독립선언서 1장을 얻어 가지고 오면서부터 계획되었다. 이에 기독교측·천도교측·일반 주민대표들이 동부동(東部洞) 유봉영(劉鳳榮) 집에서 3·4차례에 걸쳐서 비밀회의를 갖고, 읍내 장날인 3월 7일 예배당 종소리를 신호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약속하고, 독립선언서의 등사는 천도교측에서, 태극기의 제작은 안봉국과 심치경이 담당하였다. 3월 7일 정오경 예배당의 종소리가 울리자, 계획대로 기독교인·천도교인·일반주민들이 예배당으로 모여들었다. 이에 김영락의 사회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독립만세를 외친 후 시위행진을 하였다. 이날 그도 수천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시위행진을 하였는데, 시위행렬이 우편소앞을 지날 때 일본인 직원이 이를 보고 욕설을 퍼부었다. 이때 격분한 그가 시위군중과 함께 일본인에게 투석을 하자, 미리 병력을 증파하여 경비하고 있던 철도원호대(鐵道援護隊)가 즉시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그는 총탄에 맞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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