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成基
1886-04-23 ~ 1943-06-1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성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하동(河東) 사람이다. 1919년 3월 23일 하동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정성기는 양보면(良甫面) 장암리(長岩里)의 교사 정섬기(鄭暹基)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고, 태극기 수십 장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양보면 우복리(愚伏里) 정이백(鄭伊伯)·고전면(古田面) 성천리(城川里) 이경호(李璟鎬) 등을 규합하여 인근 동리에 비밀연락을 취하는 등 거사준비를 서둘렀다. 정성기를 비롯한 주동자들은 3월 23일 하동읍 장날 태극기를 숨겨 가지고 장터로 나아갔다. 그리고 장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약 7∼8백 명의 군중과 만세운동을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5월 27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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