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聖連
생몰년 미상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성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8~1909년 전북 임실(任實)ㆍ태인(泰仁)ㆍ순창(淳昌) 등지에서 수십 명의 의병을 이끌고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정성연은 1908년 10월부터 임실ㆍ전주(全州)ㆍ금구(金溝)ㆍ태인 등지에서 제2초(哨) 십장(什長) 전석기(全錫基) 등과 활동하였다. 1909년 2월 남원(南原)에서 7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다. 같은 해 11월까지 태인ㆍ임실ㆍ전주 등지에서 군수품과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한편, 전북의 대표적 의진을 이끌었던 이석용(李錫庸)ㆍ양윤숙(楊允淑) 등과 긴밀하게 연계하며 활동을 벌였다.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일제는 여러 차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였으나, 정성연은 체포되지 않았다. 그의 부하들 중 전석기ㆍ김종삼(金鍾三)ㆍ김현일(金玄一)ㆍ소윤명(蘇允明)ㆍ양운경(梁雲京)ㆍ김윤오(金允五)ㆍ한흥삼(韓興三)ㆍ김낙필(金洛必) 등은 체포되어 이른바 내란ㆍ폭동ㆍ강도죄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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