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聖凞
(1888)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성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5년 7월 미국에 건너가 캘리포니아주 디뉴바(Dinuba) 지역에 체류하며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국민의무금(國民義務金)과 학생양성소 중수 의연금 등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1918년 11월 귀국하였다. 1919년 3월 2일 정성희는 평안남도 증산면 이안리(利安里) 교회당에서 교회 목사 송익주(宋翼周) 요청으로 설교를 하였다. 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예배를 마친 후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독립선언서」도 낭독하였다. 이날 집회에는 300여 명이 참여하였는데, 검거된 사람은 13명이었다. 증산면 전체에 이 만세운동 소식이 퍼져나갔다. 3월 3일 증산면 주민들이 증산 시가에 모여 만세를 불렀다. 정성희는 3월 2일 당일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6월 1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상고했다. 7월 3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수감생활을 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9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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