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世昌
미상 ~ 1912-07-17·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세창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전북 임실·순창 등지에서 활약하던 이석용의진(李錫庸義陣)의 참모로 활동하였다. 1908년 8월 전북 진안(鎭安)에서 거의(擧義)하여 의병대장에 추대된 임실 출신의 유생 이석용은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이었다. 이석용은 1908년 9월 성재 기삼연(奇參衍)이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하자 종사(從事)로 참여하여 고창(高敞)에서 일본군 병참을 습격하였고, 용담(龍潭)에서는 김동신의진(金東臣義陣)과 합세하여 일본군과 접전하기도 하였다. 1908년 9월 임실전투(任實戰鬪)에서 패하여 의병진을 해산하고 유랑하다가 1913년 겨울 임실에서 체포되었다. 1914년 1월 1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공판을 받아 1914년 4월 4일 대구형무소에서 교수되어 순국(殉國)하였다. 정세창은 이석용부대의 참모로 활동하였다. 그는 1908년 9월 임실전투에서 패한 이석용이 의병진을 해산한 뒤 독자적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9월 일본군의 소위 남한대토벌작전을 피해 충청북도로 이동하였다. 1911년 10월 청주에서 김수옥(金守玉)과 김학준(金學俊)을 동지로 영입하여 태인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1912년 2월 12일 태인분견소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1912년 5월 2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7월 17일 대구감옥에서 사형(死刑)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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