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元明
(186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원명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평산군(平山郡)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평산군에서는 3월 7일 읍내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날 헌병의 발포로 수명이 희생되고 수십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울분을 느낀 평산의 군민들은 3월 30일 읍내의 은담리(隱潭里)와 빙고리(氷庫里)에 ‘대한국독립만세(大韓國獨立萬歲)’라는 전단을 붙이고, 헌병 주재소와 군청 게시판 및 군청 문 앞에 태극기를 붙이는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3월 31일 금암면(金岩面) 한포리(汗浦里)와 인산면(麟山面) 기린리(麒麟里)에서는 수백 명의 군민들이 장터 등지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양 시위에서는 일경의 발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정원명은 “20세기 신문명의 대세는 자유이며, 이에 따라 조선의 독립도 천연의 원칙이다”라는 판단 아래, 3월 31일 한포리 장터 등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일경에 체포된 정원명은 1919년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