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元明
1881-11-20 ~ 1942-06-2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원명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5년부터 1942년까지 미국 하와이에서 에와친목회, 한인합성협회(韓人合成協會),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하와이지방총회 등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5년 친목회 회장, 1907년 하와이 한인통일단체인 한인합성협회 회장, 1909년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총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09년 3월 김유순ㆍ강영소(姜永昭)ㆍ민찬호(閔贊鎬)ㆍ이내수(李來洙)ㆍ안원규(安元奎) 등과 한인식산흥업회(韓人殖産興業會)를 조직하고 사장에 취임하여 민족자본 육성에 힘썼다. 1910년 7월 초순 일제가 한국을 병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호놀룰루 각 지방 대표자들과 함께 대동공진회(大同共進團)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어 '한일합방 반대' 투쟁을 전개하였다. 1911년부터 1917년까지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대표원ㆍ참의원 참의장ㆍ대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1919년 중한장유회사(中韓醬油會社) 임시이사원 겸 회계, 1921년 한인호놀룰루상업회 재무로 활동하였다. 1925년 1월에는 호놀룰루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후원회 회장으로 기관지 『단산시보(檀山時報)』를 발행하였다. 1928년 한족통일독립당촉성회 준비위원회 위원, 촉성회 집행위원회 의사부 위원, 1930년 하와이한인협회 임시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34년 하와이국민회 대의원들과 함께 사회문제연구대회를 개최하였고, 하와이국민회와 대조선독립단 합동회의 합의위원, 1936년 하와이국민회 총회 참의원, 1937년 하와이국민회 역사편찬 사료수집 위원 및 찬무회 찬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부터 1942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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