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元弼
1870-07-17 ~ 1906-05-31·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원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정원필은 충청남도 홍성(洪城) 출신으로 당시의 홍성은 호서지방 의병운동의 중심지였다.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정원필은 채원묵(蔡元默)·성재한(成載翰)·서기환(徐基煥) 등과 함께 거의하였다. 이때 척신인 민종식(閔宗植)이 홍주의 김복한(金福漢)·안병찬(安炳瓚)과 접촉하여 홍주의진과 연결을 모색하는 한편 척신인 민영휘(閔泳徽)·민경호(閔京鎬) 등에게 동조할 것을 권하였으나 현실주의자인 그들은 협력을 기피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김복한 등이 먼저 홍주에서 거의하여 안병찬 등 많은 의사들이 적에게 체포되었다. 이에 민종식은 1906년 5월 11일 충청도 홍산(鴻山) 지치(支峙)에서 창의의 깃발을 올리고 곧 홍주성에 입성하였다. 정원필은 민종식 의진에 입진하였다. 그후 일시 물러났던 적은 끊임없이 성을 공격하였으나 의진은 번번히 이들을 격퇴시켜 개가를 올렸다. 그러나 5월 31일 적이 대대적으로 공세를 가해 이날 새벽 3시경에 큰 폭음과 함께 성의 동문이 파괴되고 적이 물밀 듯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정원필 등 의진은 끝까지 항전하였으나 의병들은 모두 흩어지고, 정원필은 접전 중에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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