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在麒
1889-01-27 ~ 1953-08-2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재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4일 충청남도 서산군 대호지면(大湖芝面)과 정미면(貞美面)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다. 1919년 2월 하순경 고종의 국장을 참례하기 위해 상경했던 남주원(南柱元)·남상락(南相洛)·이대하(李大夏) 등이 3.1운동을 견문하고 귀가하여 독립운동을 논의했다. 대호지 면직원들은 4월 2일 밤 면장 공문으로 ‘도로 보수 가로수 정리의 건’을 작성해 면내 8개 마을에 전달했다. 밤에는 한운석(韓雲錫)이 작사한 애국가(愛國歌)를 약 400매를 인쇄하고 광목(廣木)으로 구한국기인 태극기 1기(旗)를 만들었다. 4월 4일 아침 면민 약 400~500명이 조금리(調琴里) 면사무소 앞에 집합했다. 면장 이인정(李寅正)이 “조선독립운동을 위해 모이게 한 것이다”라는 연설을 한 후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면민들도 호응해 독립만세를 연호했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애국가를 받은 군중들은 정미면 천의시장(天宜市場)으로 향했다. 장정리(長井里)의 정재기(鄭在麒)는 김봉국(金鳳國)·김찬용(金贊用)·남정혁(南廷爀)·유동렬(柳東烈)·정상봉(鄭相鳳) 등 마을 주민들과 함께 참가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오전 11시경 쯤에 정미 천의시장에 1,000명의 군중들이 집결했다. 이들은 대열을 갖추어 천의시장·천의경찰관주재소·정미면사무소 등으로 진출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시위대에 발포한 순사를 응징하고 주재소를 파괴하고 나서 대호지를 향해 귀가했다. 정재기는 대호지면·정미면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경찰에 체포되었고 ‘소요·보안법 위반’ 혐의로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1919년 5월 21일 불기소 처분되었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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