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在鎬
1886-08-14 ~ 1956-03-31·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鄭在浩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재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북 경성(鏡城) 사람이다. 1919년 4월 중국 상해(上海)에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서 국내비밀조직인 연통제(聯通制) 실시를 공포하자, 동년 7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명제세(明濟世)로부터 함경북도 연통제 조직을 요청받은 그와 윤태선(尹台善)·전재일(全在一) 등은 20여 일간에 걸쳐 수차례 왕래하며 조직결성을 논의하였다. 이어 경성읍(鏡城邑) 승암동(勝岩洞) 송완섭(宋玩燮)의 집에서 이상호(李相鎬)·전재일·김동식(金東湜)·정두현(鄭斗賢)·이운혁(李雲赫)·장창일(張昌逸)·송관섭(宋瓘燮)·송윤섭(宋允燮) 등 경성군내 관리·학생·종교계 인사들과 회합을 가졌으며, 그후 계속하여 윤태선·전재일·정두현 등 용포동(龍浦洞)·원향동(元鄕洞)·남부동(南部洞)·용천동(龍川洞)·남석동(南夕洞) 5개 동의 유지들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경성군 연통제 총감부를 조직하고, 전재일을 함북 지부장에 선임하였으며, 재무에 정두현, 서무에 박두환, 경무부장에 전용락을 각각 임명하였다. 또 각 면에는 사감을 임명하였는데, 오촌면(梧村面)에는 정두현, 주을온면에는 최병학, 주북면에는 석린욱, 나남면에는 이영순, 용성면과 어랑면에는 이희복을 임명하였다. 이어 군자금 모집, 시위운동, 일본군 무장상황, 군경청사 조사 등을 내용으로 한 유고문(諭告文)·사령서(辭令書)를 낭독함으로써 폐회하고 자신이 직접 지휘하여 태극기를 들고 봉화대 낙타봉으로 향하던 중 일경의 포위망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주동자의 한사람으로 나남경찰서(羅南警察署)에 붙잡혀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1920년 8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서울 서대문(西大門)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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