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在浩
1891-02-07 ~ 1943-12-27·일제강점기
이명·자·호 정원일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재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영천(永川)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하지 못한 유림(儒林) 인사들은 김창숙(金昌淑)·곽종석(郭鍾錫) 등을 중심으로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우리의 독립을 인정받게 하기 위한 파리장서(巴里長書)를 제출하였는데 그는 137인 중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으며, 일경의 감시를 피하여 가족을 데리고 만주로 건너갔다. 1920년에 함경북도 지방에 돌아와 임시정부 연통제(聯通制)를 조직하고 윤태선(尹台善)·이상호(李相鎬)·전재일(全在一) 등 수십명의 조직원과 함께 활동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에는 다시 만주로 건너가 1925년 길림성 화전현(樺甸縣)에서 이 탁(李 )·지청천(池靑天)·김이대(金履大) 등이 조직한 정의부(正義府)에 가입하여 무장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특히 그는 1926년 4월부터 정의부 검무감(檢務監) 고인섭(高仁燮)과 함께 봉천(奉天), 개원(開原)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일경의 밀정 처단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27년 2월 12일에 개원성 동문밖에서 체포되어 신의주로 압송되었다. 그는 결국 1927년 12월 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다시 옥고를 치렀다. 1943년에 함경도 지방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사하였다고 하나 이에 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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