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昌贇
미상 ~ 1920-01-27·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창빈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경도 사람이다. 이동휘(李東輝)의 첫째 사위이다. 8세 때에 손가락을 잘라 어머니를 구한 효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1907년 계봉우(桂奉瑀)의 추천으로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이동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1911년 1월에는 계봉우와 함께 북간도로 망명하여 동지역의 계림촌(鷄林村)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이어 1916년 12월에는 노령(露領) 연해주(沿海州) 도비허에 있는 화동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재러동포 자제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진력하였다. 한편 이 시기에 정창빈은 만주, 러시아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이동휘의 장녀 이인순(李仁橓)과 혼인하였다. 1918년 가을경 북간도 국자가(局子街)에서 활동하던 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하였으며, 이곳에서 경제적으로 이동휘를 돕기 위하여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하였다. 한편 1919년 11월 부인 이인순이 장티푸스로 사망하고 이어서 아들 정광우(鄭光宇, 5세)도 역시 장티푸스로 사망하자, 1920년 1월 27일 음독 자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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