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昌善
1895-04-1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창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31일, 4월 1일에 함경북도 청진부 신암동(新岩洞), 포항동(浦項洞)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다. 1919년 3월 15일 윤병후(尹炳厚)가 신암동과 경성군(鏡城郡) 용성면(龍城面) 수성동(輸城洞) 부근에서 동시에 독립만세운동을 시도했다. 한편 원산(元山)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해 귀가한 장채남(張彩南)은 서성칠(徐星七), 윤학송(尹學松)의 방문을 받고 독립만세운동을 협의했다. 3월 31일 정오경 신암동 윤학송 집 마당에 약 400명이 모였다. 윤병후 등은 국기를 배포하고 큰 국기를 앞세우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군중들은 신암동 일대를 활보하고 윤병후와 김장환(金張煥)이 독립 연설을 했다. 한편 박원후(朴垣厚)·김관하(金寬河)·안창희(安昌熙) 등이 3월 31일 김관하 집에 모여 독립만세를 협의하고 구한국기 약 50기(旗)를 제작했다. 이들은 4월 1일 오후 1시경 포항동 박이화(朴利和) 집 문 앞에서 구한국기를 배부하여 약 150~200명을 이끌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러한 만세운동에 참여한 정창선은 박원후·김관하·안창희 등과 함께 함흥지방법원 공판에 회부됐다. 정창선은 청진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청진헌병주재소 헌병에 체포되어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 검사분국에 송치됐다. 1919년 4월 17일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를 선고받는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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