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致敏
(189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치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철산(鐵山) 사람이다. 1920년 9월 5일 만주 관전현(寬甸縣)에서 김창곤(金昌坤)·한철수(韓哲洙) 외 동지 6명과 함께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에 가입하고, 각자 권총과 기타 무기를 휴대하고 국내에 진입하여 각 지방을 순회하며, 청년을 모집하여 의용단 본부에 보내는 한편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아울러 평북 의주 비현면(枇峴面)에서 친일파를 처단하는 활동을 하였다. 1921년 1월 20일 평북 철산군 주재소 순사 김의주(金義柱)를 유혹한 후 독립단원 2명이 침입하였으니 체포하라고 거짓정보를 제공하여 순사가 나간 틈을 이용하여 주재소에 있는 무기와 권총으로 김의주에게 부상을 입히고, 5월 17일 압록강 부두에서 독립단의 왕래를 감시하고 있던 헌병 하성진(河成鎭)과 밀정 나자현(羅子賢)을 총살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1921년 10월 24일 신의주지청에서 김창곤·한철수와 함께 사형을 받고 공소, 1922년 4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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