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泰復
1888-10-01 ~ 1960-01-18·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태복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홍성(洪城) 사람이다. 1917년 9월(음력) 홍성군 장곡면장(長谷面長)으로 있으면서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 충청도 지부책 김한종(金漢鍾)의 권유로 박상진(朴尙鎭)·채기중(蔡基中)·유창순(庾昌淳) 등이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조직한 광복단에 가입하였다. 그 직후 김한종의 지시로 장곡면 신풍리(新豊里) 자택에서 광복회 고시문 200여매를 등사한 뒤 김한종에게 전달하여 친일부호들에게 발송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또한 정인교(鄭仁敎)가 군자금 출금을 요구하는 채기중·김한종 등의 요구를 거부하자, 같은 해 12월 정인교를 직접 찾아가서 국권회복을 도모하는 광복회의 취지를 알리고, 출금을 거부하면 죽음을 면할 수 없다고 밝힘으로써 군자금 100원을 모집하는 등, 충남 일대에서 광복회 군자금 모금에 힘쓰다가 1918년 2월 채기중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2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공갈, 살인, 방화 등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또한 1921년 9월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태평양회의에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과, 파견된 한국대표에 대한 대표권 인정을 요구하는 진정운동이 전개될 때, 광복회를 대표하여 서명하고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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