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泰信
1892-02-07 ~ 1923-08-12·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鄭又影, 鄭泰玉, 鄭震, 高山義夫, 鄭羊鳴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태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정태신은 1914년 9월 일본에서 ‘조선인친목회(朝鮮人親睦會) 간사장으로 조선인의 권익향상에 노력하였다. 1920년 서울에서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에 참여하여 강연회의 연사와 노동야학의 강사로 활동하면서 기관지 ‘공제(共濟)’의 발행에도 참여하였다. 1921년 동경에서 조선인고학생동우회(朝鮮人苦學生同友會)에 가입하고 주간잡지 대중시보(大衆時報)의 발간에 참여하였다. 동년 12월 러시아의 기근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동아일보에 두 차례 연재했다. 1922년 7월 김약수(金若水)와 협의하여 상해(上海)를 거쳐 모스크바로 가서 코민테른의 편산잠(片山潛)과 면담하였고, 8월 돌아오는 길에 상해에 들러 여운형(呂運亨) 등이 주최하는 국치기념대회(國恥記念大會)에 참석하였고, 대회 직후 교민대회에 참가하여 김구(金九) 등과 함께 연설하였다. 동년 10월 러시아 베르흐네우진스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통합대회에 재동경(在東京)조선인공산주의단체 대표자로 참가하였다. 1923년 1월 서울에서 북성회(北星會) 결성에 참여했고, 7월 북성회 국내 순회강연단의 일원으로 귀국했다. 8월 1일 서울 천도교 강당에서 ‘청년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강연을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09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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