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泰鎭
1903-07-25 ~ 1952-11-0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태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파주(坡州) 사람이다.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1927년 미국에 건너가 우스터대학 철학과를 거쳐 콜럼비아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31년 귀국하여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永生女子高等普通學校)의 교사로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으며, 1941년 6월 조선어학회의 조선어사전편찬 전임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42년 10월에 일제가 한국민족을 탄압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어 말살정책을 야수적으로 강화하고 한글학자들과 한글운동가들을 투옥하여 탄압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운동으로 붙잡혀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와 함흥경찰서에서 일제의 잔혹한 고문과 악형을 받았다. 1945년 1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8·15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1952년 「우리말 큰사전」속간을 위해 서울에서 편찬사업에 진력하다가 귀향 도중 교통사고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62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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