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海鵬
1924-12-09 ~ 1991-06-22·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해붕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안동공립농림학교(安東公立農林學校) 재학 중 1941년 상지회라는 서클활동을 하다가 명성회와 연합하여 1943년 가을 비밀모임을 가지면서 동지를 규합해 나갔다. 이들은 목성동(木城洞)의 황병기 하숙방, 낙동강 제방, 동부동 서정인(徐正寅, 10기)의 집 등에서 모임을 가지고 마침내 1943년 10월 말 학생비밀결사 조선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을 결성하였다. 조선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은 계속 동지를 규합하여 그 인원이 50여 명에 달했으며, 무장투쟁을 방략으로 삼았던 독립군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그들의 계획은 ① 안동농림학교 무기고에 있는 총을 가지고 ② 경찰서·헌병대를 접수하여 무장하고 ③ 일본인들을 제압하여 ④ 철도 통신망을 파괴한 후 ⑤ 의성으로 진격하여 ⑥ 대구에서 오는 일본군을 방어한다는 것이었다. 조선회복연구단에서 활동하던 중이던 그는 1945년 3월 10일 거사를 계획하였으나 10기생인 강형원·현필기 등이 순찰 중이던 일본경찰에 체포된 후 가택수색에서 조선회복연구단원 명부가 발견되어 거사일 이전에 전부 체포되어 안동형무소에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