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洪謨
1904-06-01 ~ 1947-06-03·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鄭萬伊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홍모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정홍모는 1924년 3월 순천 사립 매산학교(梅山學校)를 졸업하고 1925년 2월부터 광주에서 시대일보사 배달겸 수금원으로, 5월부터는 조선일보 광주지국에서도 근무하였다. 1926년 4월 현 사회제도를 개혁하여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고려공산청년회의 회원이 되었다. 8월에 제2차 고려공산청년회의 광주야체이카에 소속되어 동지를 규합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 1926년 8월 29일, ‘제2차 조선공산당’ 활동에 연루, 경성역 1등 대합실에서 붙잡혔다. 1928년 2월 13일 정홍모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 130일 통산)을 받아 서대문형무소에 옥고를 치르고, 1928년 10월 6일 만기 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도 1929년 전남청년회연합회에 참여하여 사회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06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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