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化中
1888-07-07 ~ 1931-08-09·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鄭海永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화중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북 영동(永同) 사람이다. 1919년 3월부터 영동군 학산면(鶴山面)에서 김승림(金升林) 등 6명의 동지들과 함께 수차례 만세시위 거사를 계획하였다. 이윽고 4월 16일 영동 무주간(永同 茂朱間) 도로 부역에 나온 수백명의 군중을 규합하여 학산 주재소를 점거하고 기물을 파괴한 후 임원들이 심으려고 실어다 놓은 뽕나무 수만 주를 불태워 항일의 기세를 높혔다. 그는 다시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절규하면서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출동한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그 해 6월 1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3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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