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希三
(188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희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1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에서 정사흥의 권유로 대한독립군에 참여하고, 이 듬해 단원 황용운·심창순 등과 함께 여러 차례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1년경 중국으로 건너와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상의사(尙義社)에 거주하던 중, 음력 11월 28일 정사흥(鄭士興)의 권유로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단원이 되었다. 1922년 음력 1월 13일 대한독립군 단원 황용운(黃龍雲), 심창순 (沈昌淳) 등과 함께 연길현 숭례향(崇禮鄕) 차조구(茶條溝) 남흥동(南興洞) 거주 유양록(劉陽祿)에게 자기는 합동단원(合同團員)이라고 밝힌 후 군자금을 모집 하였다. 이후 연길현 일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25년 2월 27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소위 강도, 대정(大正)8년 제령(制令)7호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3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 취하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3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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