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喜鍾
1872-10-22 ~ 1943-04-1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정희종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정희종은 흥인배재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1919년 11월 20일경 서울 창신동에서 대동단(大同團, 朝鮮民族大同團) 단원 나창헌(羅昌憲)의 부탁을 받아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배포하였다. 대동단은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전민족의 대동단결을 표방하며 조직하였다. 대동단은 진신단(縉紳團)·유림단(儒林團)·군인단(軍人團)·부인단(婦人團)·상공단(商工團)·청년단(靑年團)·지방단(地方團) 등으로 조직을 키우고, 11월 27일 오후 5시를 기하여 광화문 앞 광장에서 제2차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했다. 정희종은 1919년 11월 25일경에 나창헌의 의뢰를 받은 강정희(姜正熙)로부터 독립선언서 약 50장과 상해에서 보내온 여러 종의 선언서 약 50장을 받았다. 다음날 밤, 그것을 가지고 교회에서 알게 된 전대진(全大振)을 찾아가 27일의 시위운동 사실을 알리고 배포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된 정희종은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정치범죄처벌령), 출판법, 보안법 위반 및 사기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 200일 통산)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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